“재판 개입은 사법행정권 남용”…양승태 유죄 판단, 대법원 판례와 정면 충돌
작성일 : 2026.01.30 22:52
작성자 : 사회부
30일 사법농단 사태의 정점으로 꼽혀 온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항소심 판결은 사실관계보다 법리에서 갈렸다. 쟁점은 단 하나, 재판 개입 행위에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였다.

그동안 사법농단 사건 관련자 다수가 무죄를 선고받은 배경에는 ‘직무상 권한이 없으면 직권남용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확립된 법리가 있었다. 재판 사무에 개입할 권한 자체가 없는 사법행정권자가 이를 남용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서울고법은 2022년 이 논리를 받아들였고, 대법원 역시 같은 해 이를 판례로 확정했다.
이 법리는 임성근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 사건을 비롯해 주요 사법농단 사건에서 연이어 무죄 판단을 끌어냈다. 사법행정과 재판을 엄격히 분리함으로써 재판 독립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날 항소심 재판부는 이와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구체적 사건의 재판에 관여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행위는 대법원장이 가진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확정 판례와 궤를 달리하는 판단이자, 사실상 새로운 법리의 제시였다.
재판부는 1심 논리를 그대로 따를 경우 ‘위법·부당한 재판 개입은 애초 누구에게도 권한이 없는 행위이므로 직권남용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며, 이는 헌법이 보장한 재판의 독립을 오히려 형해화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항소심은 재판권 자체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가 보호하는 ‘구체적 권리’로 봤다. 사법행정권자가 외형상 권한을 행사하는 형태로 재판에 개입할 경우, 실제로 판결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더라도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초래하게 되고, 그 자체로 개별 법관의 정당한 재판권 행사가 방해받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는 “실제 재판 결과에 영향이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며 무죄 판단의 근거로 삼았던 1심 논리를 정면으로 뒤집은 대목이다.
재판부는 헌법 제103조와 법관윤리강령을 인용하며 재판 독립의 헌법적 의미를 강조했다. 재판의 독립은 단지 법관 개인의 권한 보호가 아니라, 공정한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장치이며, 이 신뢰가 무너지면 법치주의 역시 유지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기존 판례의 경계를 넘어 직권남용죄의 적용 범위를 크게 확장한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재판 개입 행위의 실행 주체가 당시 행정처 기조실장이나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 ‘하급자’였음에도, 이를 지휘·관리한 대법원장에게 형사책임을 인정한 점, 전체 47개 혐의 중 2개만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양형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집행유예가 확정될 경우 5년간 변호사 활동이 제한된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이 법리 판단을 넘어 응보적 성격을 띤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적지 않다.
대법원 판례와 정면으로 충돌한 이번 항소심 판단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 측은 “확립된 직권남용 법리에 반하는 판결”이라며 즉각 상고 방침을 밝혔다. 사법농단 사태의 법적 결론은 다시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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