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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몸 기울여’, 길고양이 살해로 드러낸 일상의 폭력

은폐된 남성 집단의 폭력 구조를 서늘하게 해부

작성일 : 2026.01.24 16:35

작성자 : 문화부

몸을 조금만 앞으로 기울이면, 우리가 외면해온 폭력의 실체가 발밑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연극 '몸 기울여' 출연진이 23일 개막 공연을 마치고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상윤, 조형래, 강혜련, 홍성민, 유독현, 김상보, 임솔균.

지난 23일 개막한 2026년 공연예술창작산실 선정작 연극 ‘몸 기울여’는 일상 속에 은폐된 폭력이 어떻게 반복되고 전승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한 지방 소도시 남성 집단의 관계를 통해, 폭력이 개인의 일탈이 아닌 구조와 문화의 산물임을 서늘하게 드러낸다.

이야기는 군부대 이전 이후 황폐해진 가상의 공간 도암읍 옛 군사 부지에서 시작된다. 군인들이 떠난 자리를 차지한 것은 길고양이들이다. 정육점에서 일하는 정형사 홍인은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기 위해 이혼한 전 부인 서라를 이곳으로 부른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마주한 것은 잔혹하게 살해된 고양이 사체와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길고양이 살해 사건이다. 경찰이라는 공권력이 침묵하는 상황에서, 홍인과 서라는 남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직접 범인을 추적한다.

작품의 미덕은 ‘폭력’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추상화하지 않고, 극히 구체적인 감각의 세계로 끌어내린 데 있다. 2023년 서울연극제 대상을 받은 김윤식 작가는 생존을 위해 동물의 살을 취하는 정형사의 직업과 거리의 길고양이를 대비시키며, 생존 본능에서 출발한 폭력이 어떻게 왜곡되고 전이되는지를 치밀하게 보여준다. 특히 남성성의 증명을 위해 형성되는 폭력적 유대에 대한 통찰은 불편할 만큼 날카롭다.

극 속 인물들은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짓밟거나 위험을 과시함으로써 집단 내 지위를 확보하려 한다. 이 모습은 학교폭력과 군대 가혹행위 등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위계적 폭력의 축소판처럼 다가온다.

신진호 연출은 이러한 희곡의 문제의식을 자극적 재현 대신 분위기와 구조로 구현한다. 길고양이 살해라는 극단적 사건을 다루면서도 선정성에 머물지 않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침묵과 방관의 공동체를 전면에 드러낸다. 폭력이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용인된 시스템의 결과임을 무대 위에 또렷이 새긴다.

배우들의 연기도 극의 완성도를 끌어올린다. 김상보는 젊은 군수이자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준비하는 유력 정치인 동파 역을 맡아,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모하는 과정을 섬뜩하게 그려낸다. 점잖은 외피 아래 숨은 폭력성과 뒤틀린 쾌락을 오가는 연기는 관객에게 불쾌함과 질문을 동시에 남긴다. 유독현은 정형사 홍인의 내적 딜레마를 묵직하게 구현했고, 강혜련은 사건의 진실에 집요하게 다가가는 서라 역으로 긴장감을 유지한다. 조형래, 홍성민, 박상윤, 임솔균 등 배우들의 앙상블은 도암읍을 폭력이 잠재된 현실 공간으로 완성시킨다.

제목 ‘몸 기울여’는 작품의 질문을 압축한다. 멀리만 바라보며 불편한 현실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몸을 숙여 발밑의 고통을 직시할 것인가. 연극은 관객에게 지금 어디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는지 묻는다. 타인의 고통에 무뎌진 사회에서 이 질문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전 회차 한국어 자막 해설을 제공해 접근성을 높인 ‘몸 기울여’는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을 무대 위에 올린다. 공연은 다음 달 1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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