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 양민 학살 보도로 퓰리처상 이끈 탐사보도 선구자
작성일 : 2025.07.09 23:32
작성자 : 문화부
50년 넘게 한국 외신 보도 최전선에 몸담으며 ‘거목’으로 불리던 신호철(영어명 폴 신) 전 AP통신 기자가 별세했다. 향년 85세.
![2015년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고인 [촬영 이지은]](/img_up/shop_pds/opentimes/gisa/2025/akr20250709155400505_01_i1752071660.jpg)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8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자택에서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노근리 미군 양민 학살 사건을 세계에 폭로한 AP통신 취재팀을 지휘해 2000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대표적 한국계 외신기자다. 국내에선 연합뉴스 외국어뉴스 자문위원으로도 오래 활동하며 후배 기자 양성에 힘썼다.
1940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그는 광주일고와 서울대 사범대 영어과를 거쳐 ROTC 1기로 임관, 통역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뒤 1965년 코리아헤럴드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이후 UPI 통신을 거쳐 1986년부터 2003년까지 AP통신 한국지국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1970~80년대 외신 취재 환경은 열악했다. 그는 2003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무전장치 송고, 전보 예약이 특종을 결정짓던 시절이었다. 전화도 집에 제때 놓지 못해 김대중 납치사건을 대여섯 시간 후에 알았을 정도”라며 당시의 열악한 취재 여건을 회고했다.
그의 기자 생활은 한국 현대사의 흐름과 궤를 같이했다. 야당 탄압, 학생운동, 남북 긴장으로 점철된 암흑기 속에서도 그는 “국제사회가 한국을 편견 없이 보게 하려는 책임감이 컸다”고 숱한 회고에서 밝힌 바 있다.
1980년 2월 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과 함께 1사단을 동행 취재한 일은 “미국이 신군부의 거사를 승인하는 신호로 해석돼 기억에 남는다”고도 했다. 남산에 불려가고 미행을 당하면서도 그는 펜을 놓지 않았다.
외신기자 경력의 정점은 2000년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을 AP 특종보도로 이끌며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을 수상한 것이다. 당시 그는 지국장급인 AP 부장으로, 한국전쟁 시기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고발한 최상훈·찰스 핸리 기자팀의 취재를 국내에서 총지휘했다.
퇴직 후에도 연합뉴스 외국어뉴스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후배들에게 영문기사 작성법을 전수했다. 2016년엔 ‘영문기사 작성법’ 단행본을 펴내 “영문 기사에도 정확성과 간결성은 생명”이라는 철학을 담았다.
국내 외신기자 사회에서 ‘폴 신’은 롤모델 이상의 상징이었다. 연합뉴스 관계자는 “신 기자는 단순한 언론인을 넘어, 한국의 격동 현대사를 세계에 기록한 ‘역사적 필자’였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부인 이화자씨와 아들 신동훈씨, 며느리 유정임씨 등 유족을 남겼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4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0일 오전 7시 40분, 장지는 용인천주교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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