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고문받던 의성경찰서 터에 건립
작성일 : 2025.05.19 23:24
작성자 : 문화부
항일 신앙운동의 상징으로 평가받는 주기철(1897∼1944) 목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주기철목사수난기념관’이 19일 경북 의성군에 문을 열었다.
![주기철 목사 [조선오페라단 제공]](/img_up/shop_pds/opentimes/gisa/2025/c0a8cae20000016370d421a70000053d_p41747664790.jpg)
기념관은 일제강점기 당시 의성경찰서로 사용되던 건물 2동을 리모델링하고, 3층 규모의 신축 건물을 더해 조성됐다. 주기철목사수난기념관사업회(이하 사업회)에 따르면, 의성경찰서는 주기철 목사가 일제에 체포돼 압송돼 온 장소 중 한 곳으로, 이번 기념관 건립은 역사적 장소성과 상징성을 동시에 갖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념관에는 주기철 목사의 생애, 항일운동, 지역과의 인연 등을 조명하는 다양한 전시물이 마련됐다. 기념관 건립에는 국비와 지방비 등 총 38억6천만원의 예산이 투입됐으며, 의성군이 사업을 주관하고 사업회 산하 주기철목사사업주식회사가 위탁 운영을 맡는다.
주기철 목사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뒤 부산과 마산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했다. 1936년에는 평양 산정현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으며, 이 시기부터 일본 제국주의의 신사참배 강요에 강력히 저항했다.
1938년 9월, 전국 장로회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자 그는 ‘일사각오’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신자들에게 신사참배 거부를 호소했다. 결국 그는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장기간 구금됐으며, 가석방 이후에도 항일 설교를 멈추지 않아 1940년에는 불경죄와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옥고를 치르던 중인 1944년 4월 21일, 주기철 목사는 끝내 옥중에서 순국했다. 그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친 대표적 독립운동가이자 종교인으로 평가되며,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독립유공자로 지정했다.
사업회 관계자는 “기념관은 단순한 역사 전시 공간을 넘어, 항일 신앙운동과 독립정신을 오늘날 계승하는 의미 있는 공간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념관은 일반 관람객에게도 개방되며, 향후 청소년 대상 역사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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