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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SF 블랙코미디 ‘미키 17’, 익스펜더블의 삶과 죽음의 경계

로버트 패틴슨 1인 2역… 자본주의의 비극을 희극으로 풀어내다

작성일 : 2025.02.17 20:02

작성자 : 문화부

17일 한국 시사회에서 공개된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은 얼어붙은 행성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음을 반복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복제 인간이라는 소재를 활용해 계급과 노동, 자본주의의 구조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한편, 블랙코미디 특유의 유머를 가미해 봉준호만의 색깔을 확실히 드러냈다. 그러나 과감한 메시지와 장르적 실험에도 불구하고 전작들에 비해 극적 긴장감이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영화 '미키 17' 속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하는 미키는 익스펜더블(Expendable), 즉 ‘소모품’이다.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다 죽으면 복제되어 다시 태어나고, 그 과정이 무한히 반복된다. 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크레바스에 빠져 생사의 기로에 선 미키를 내려다보는 친구 티모(스티븐 연)의 태도도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키의 생사를 걱정하기는커녕 비웃으며 작별 인사를 건네는 티모에게 미키는 이렇게 대답한다.

“잘∼죽고 내일 봐.”

마치 내일 또 출근하는 직장 동료에게 던지는 농담처럼 들린다. 그러나 미키에게 그것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모호해진 세계에서,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더 고통스럽지 않은 방식을 고민할 뿐이다. 얼어 죽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괴생명체 ‘크리퍼’에게 잡아먹히는 것이 나을까.

봉준호식 자본주의 풍자, 더욱 암울해진 미래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2013), 기생충(2019) 등을 통해 끊임없이 자본주의의 부조리를 조명해왔다. 미키 17 속 2054년의 사회는 한층 더 암울하다. 첨단 기술은 발전했지만, 인간의 삶은 더 비참해졌다. 권력자들은 익스펜더블을 대량 생산하며 위험한 일터로 내몬다. 무한히 대체할 수 있는 노동자는 더 이상 존중받지 못한다.

미키가 익스펜더블을 자처하게 된 과정은 영화 초반부에서 상세히 설명된다. 티모와 함께 지구에서 마카롱 가게를 운영하다 실패한 그는 사채업자의 빚 독촉에 시달린다.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빚을 갚지 못해 죽거나, 얼음 행성 ‘니플하임’ 개척단에 지원해 위험한 일을 하며 살아남거나. 별다른 기술이 없는 그에게 허락된 일자리는 익스펜더블뿐이다. 결국 그는 신체 정보와 기억을 스캔당한 채 ‘죽으면 다시 태어나는’ 삶을 받아들인다.

이 같은 설정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접해온 관객이라면 미키의 처지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노동자, 그들의 생명보다 시스템이 더 중요한 세계. 미키 17은 그렇게 우리 사회의 민낯을 비춘다.

익스펜더블이 된 미키, 그러나 단 하나의 미키만이 살아남는다

영화 후반부, 스토리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미키 17이 크레바스에서 사망했다고 착각한 동료들이 미키 18을 새로 ‘프린트’하면서 문제는 복잡해진다. 미키 17과 미키 18이 동시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 세계에서 ‘익스펜더블’은 허용되지만, ‘멀티플’은 금지된다는 점이다. 즉, 미키 17과 미키 18 중 한 명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미키는 혼란에 빠진다. 내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면, 진짜 미키는 누구인가? 죽음을 견디며 일하고 사랑을 나눈 미키는 단순한 복제인가, 아니면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인가? 봉준호 감독은 단순히 SF적 설정을 넘어서 정체성과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정치적 풍자와 코미디, 그러나 장르적 서스펜스는 부족

봉준호 감독 특유의 유머 감각은 이번 작품에서도 돋보인다. 특히 마셜(마크 러팔로)과 일파(토니 콜렛) 부부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현실의 권력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무능하면서도 쇼맨십에 능한 마셜, 그리고 그 뒤에서 모든 결정을 내리는 아내 일파의 조합은 마치 독재자 부부를 연상시킨다.

마셜 캐릭터는 공개 직후부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근엄한 표정으로 검지를 치켜든 그의 모습과, 빨간 모자를 쓰고 그를 열광적으로 따르는 팬덤의 이미지는 현실 정치의 풍자처럼 다가온다.

로버트 패틴슨의 1인 2역 연기도 인상적이다. 운명에 순응하는 소심한 미키 17과, 시스템을 거부하는 과감한 미키 18을 완벽하게 연기하며 캐릭터의 대비를 뚜렷하게 살려냈다. 말투와 목소리 톤까지 달라 별다른 설명 없이도 두 캐릭터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장르적인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초반 40분 동안 내레이션과 플래시백으로 설정을 설명하는 방식은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이후에도 스토리가 급격한 변화를 겪기보다는 점진적으로 진행되면서 전반적으로 서사적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준다. 일반적인 SF 장르의 화려한 볼거리나 서스펜스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다소 싱겁다고 느낄 수도 있다.

봉준호의 새로운 도전, 그러나 날카로움은 유지된다

비록 서사적 긴장감에서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살아 있는 작품이다. 옥자의 동물 윤리, 설국열차의 계급 문제, 기생충의 빈부 격차처럼 이번 영화도 자본주의 시스템의 잔혹성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정재일이 참여한 음악, 다리우스 콘지의 역동적인 촬영, 황량한 디스토피아 분위기를 극대화한 미술 등 기술적 완성도 또한 높다. 특히 크리퍼들의 존재와 행성 개척이라는 SF적 요소가 결합된 후반부는 봉준호식 우화의 정점을 보여준다.

기존 SF 장르의 틀을 깬 블랙코미디적 접근, 그리고 정체성과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메시지. 미키 17은 봉준호의 새로운 도전이지만, 그 속의 날카로움은 여전하다.

28일 개봉. 137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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