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52년 재위 동안 24차례 서오릉 행차…국왕의 정치적 정통성 강조
작성일 : 2025.02.12 11:41
작성자 : 문화부
1760년 음력 3월 25일, 조선의 21대 왕 영조(재위 1724∼1776)는 선대 왕과 왕비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고양 서오릉으로 향했다. 이날 그는 부친 숙종과 왕비들이 묻힌 명릉을 비롯해 익릉과 경릉을 참배하고 능 주변을 순회한 후 재실로 돌아왔다.
![고양 서오릉 내 익릉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제공]](/img_up/shop_pds/opentimes/gisa/2025/akr20250212077600005_07_i1739328178.jpg)
능행(陵幸)은 무엇을 의미했을까
12일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가 발표한 조선시대 능행 심화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능행은 단순한 참배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국왕이 직접 왕릉을 방문하는 행위는 정치적 정통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통치자로서 백성과의 친밀성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조선시대 국왕들이 능(陵), 원(園), 묘(墓) 등 왕실 무덤을 방문한 사례는 총 211회로 집계됐다. 특히 역대 왕들이 가장 많이 찾은 곳은 태조 이성계가 묻힌 구리 동구릉(89회) 이었으며, 그다음이 영조가 자주 찾은 서오릉(63회) 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영조는 52년간 재위하면서 서오릉을 24차례 방문했다. 그는 1760년 서오릉 행차에서도 지방 수령에게 음식을 내리고, 중죄인을 제외한 고양 지역 죄수를 모두 석방하라고 명했다. 단순한 참배가 아닌, 왕의 권위를 드러내고 백성을 어루만지는 정치적 행보였던 것이다.
능행, 국왕에게는 ‘유일한 외출’…백성들에게는 큰 행사
조선시대 국왕에게 능행은 궁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였다. 보고서는 “능행은 궁궐 밖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국왕의 행위” 라며, “국왕들은 능행에 맞춰 사냥, 군사 훈련을 하거나 농사 작황을 살피고 백성들의 어려움을 듣는 대민 활동을 펼쳤다” 고 분석했다.
왕릉으로 향하는 길은 왕실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큰 행사였다. 국왕이 행차하는 동안 도로 정비와 군병 배치가 이루어졌고, 지방 관리들은 길가에서 왕을 맞이하며 지역 사정을 보고했다.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왕릉의 위상도 달라졌다. 고려대 강제훈 교수는 보고서를 통해 “과거 국왕의 지위를 상징하는 의례 공간은 종묘였으나, 17세기 이후 왕릉의 중요성이 커졌다” 고 분석했다. 종묘에서의 의례는 야간에 진행되고 제한된 인원만 참석할 수 있었던 반면, 왕릉 참배는 주간에 이루어져 국왕의 존재를 공개적으로 드러낼 기회가 됐다는 것이다.
후속 연구 필요…명 황릉과 비교 연구 제언
이번 보고서는 능행이 이루어진 시기별 추이, 경로, 군병 배치 및 규모 등을 분석하고,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해 대표적인 능행 사례 4건을 지도화했다. 연구를 진행한 고려대 산학협력단은 “향후 왕릉 운영과 제사에 필요한 경제적 기반과 관련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고 밝혔다.
또한, 조선 왕릉의 특징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고려 왕릉뿐만 아니라 명나라 황릉과의 비교 연구도 제안됐다.
궁능유적본부는 이번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조선왕릉 관련 행사와 전시 개편을 추진할 계획이다. 왕권 강화와 백성과의 소통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가졌던 능행의 가치가 현대적으로 어떻게 재조명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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